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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리 남편 결혼 로렌스 올리비에 부인 아내 사망원인 죽음

센토스 2020. 8. 31. 21:59

비비안리와 마릴린 먼로, 로렌스 올리비에가 1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를 장식했습니다. 이는 1일 오전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할리우드 스타 비비안 리와 마릴린 몬로 사이에 얽힌 사연을 소개했기 때문이랍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비비안 리가 남편 로렌스 올리비에와 함께 영화 '왕자와 무희'에 캐스팅됐던 사실을 다뤘습니다. 해당 작품은 당시 연극으로 공연된 작품으로, 비비안 리와 로렌스가 함께 호흡을 맞췄던 작품입니다다. 영화 역시 비비안 리와 로렌스 올리비에의 캐스팅이 확정된 상황이었답니다.

 

 

하지만 비비안 리는 '왕자와 무희'에 출연하지 못하게 됐고 마릴린 먼로가 주인공으로 발탁됐습니다. 당시 비비안 리는 영화 출연 무산보다 '스캔들 메이커'인 마릴린 먼로가 자신의 남편과 함께 연기하는 것에 더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고 전해졌답니다.

 

이에 비비안 리는 남편이 마릴린 먼로와 애정신을 찍자 화를 내기에 이르렀고 비비안 리의 집착에 지친 로렌스 올리비에는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이후 비비안 리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이혼 7년 만에 쓸쓸히 숨을 거뒀답니니다.

 

** 비비안 리는 누구??
영화계에 관심이 없어도 웬만하면 다 아는 전설적인 배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회나 수상할만큼[2] 미모와 연기력을 동시에 소유한 어마어마한 배우이다. 역대 세계 영화 열 손가락, 아니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어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역[3]을 매력적으로 소화하며 일약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다. AFI(미국영화협회) 선정 가장 위대한 여배우 16위에 올랐답니다.

 

1913년 11월 5일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의 다질링에서 태어났다. 연기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등도 배워서 어느 정도는 다룰 줄 알았으며, 무용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외동딸로 자랐고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았다. 인도에서 5세에 영국으로 귀국했고, 이후 가톨릭 학교를 다니다가 10대 초반부터 18세 때까지 아버지가 유럽 여행을 데리고 다니면서 학교를 몇 번씩 전학을 다녔다고 한답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 웨스트엔드의 연극 공연을 보고 배우가 될 결심을 하게되고, 런던 왕립 연극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 즈음 13살 연상의 귀족인 '허버트 리 홀먼'과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되는데, 보수적이었던 남편은 그녀의 배우 활동을 좋아하지 않았고, 때문에 그녀는 다니던 학교도 그만둬야 했답니다.

 

겨우 20세에 첫 번째 아이를 출산하고 자신과 맞지 않는 가정주부 생활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던 비비안 리는, 친구들의 독려로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되고 곧 자신의 에이전트를 만나게 된다. 이후 연극 무대에 데뷔한 그녀는 첫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이 경험은 그녀에게 좋은 기억이 아니라 나쁜 기억으로도 남게 되는데, 갑작스럽게 너무 큰 찬사를 받아서 연기에 대한 엄청난 부담감을 얻게된 것이랍니다.

 

하여간 그 데뷔 무대를 본 로렌스 올리비에가 비비안에게 다가가고 둘은 곧 불륜 상대가 된다. 원래는 둘 모두 배우자와 이혼하려 했지만, 양쪽의 상대들이 모두 이혼에 반대하는 바람에 불륜이 되고 만 것이랍니다.

 

비비안 리는 '클라크 게이블'과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를 포함한 대부분의 배우들과 친하게 지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애쉴리 역의 '레슬리 하워드'와는 앙숙이었다고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개봉 후 드디어 리와 올리비에는 각각의 파트너와 이혼하고 결혼한다. 하지만 비비안의 전 남편은 비비안 사망 전까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답니다.

 

 

비비안 리는 알다시피 전설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스칼렛 오하라역으로 유명한데 원래 배우를 다 뽑아놓고 촬영 준비 단계였으나, 유일하게 스칼렛 역만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를 본 캐스팅 관계자로 인해 막판에 최종 선발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 경우는 정말로 외모가 도와준 상황인데 원래는 '폴레트 고다드'가 스칼렛 역으로 거의 낙점 상태였으나 찰리 채플린의 아내라는 점과 비비안의 등장으로 캐스팅이 무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둘의 커리어를 대비해 보면 고다드 본인으로선 많이 안타까울 듯. 원래 코메디 연기로 유명 했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연기 변신을 할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칼렛 오하라 역에서 좌절된 이후, 채플린과 고다르의 사이는 악화되기 시작했고 위대한 독재자 촬영시에는 이미 별거 중인 상태였다고 한다. 결국 둘은 위대한 독재자 개봉 직후 이혼했답니다.

 

영화 배우로서 성공한 이후 그녀의 조울증은 오히려 점점 심해지게 되는데, 첫 번째로 그녀는 "스타"가 되기보다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었으나 대중들은 점점 그녀를 스타로만 인식하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과한 집중까지 겹쳐서 그녀는 더더욱 자신의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된단비다.

 

로렌스 올리비에와 결혼 후 부터는 영화보다는 그가 연출하거나 출연하는 연극에 함께 출연하게 되는데, 대다수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스타가 된 후, 평론가들이 그녀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찬사를 받던 배우인 로렌스 올리비에를 칭송하면서 "비비안은 영화 배우이지 연극 배우가 아니다" 혹은 "올리비에가 잘 연출해놓은 걸 그녀가 망쳤다", "비비안이 옥의 티였다"라는 식의 인신공격성 혹평을 계속해서 내놓습니다.

완벽주의자였던 비비안은 소수의 평에도 심한 상처를 입었고, 아무리 좋은 연극평이 나와도 나쁜 평에만 집착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 이후 로렌스 올리비에와 함께 영화에 출연하기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한 쪽이 캐스팅되면 한 쪽은 실패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결렬된다. [8]설상가상으로 평소 비비안 리의 건강 상태가 안 좋았던 탓에 부부의 2세를 계속 유산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조울증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결국 발작 증세까지 일으키게 된다. 특히, 영화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촬영 중에 아이를 유산했을 때 크게 낙심했다고 한답니다.